나의 작은 문학의 마을/나의글

뱃 사람들이 지키어야 하는 것들

CaptainLee 2009. 11. 15. 05:45

 

                                               부두에 화물 적제를 위해 계류하는 선박

 

뱃 사람들이 지키어야 하는 것들

 

선박에 승선을 하다 보면 선원들에게는 지키어야 할 무언의 규칙이 있다.

1974 2월 처음으로 3등 항해사의 직을 임명 받아서 선박으로 승선 하러 일본으로 출국 했다.

부산에서 관부 페리호( 당시 일본 부산 운항 여객선)를 승선 하여 일본으로 떠 나게 되었다

오후 5시가 되니 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 이라는 노래가 확성기로 울리면서 부산항을 떠나

일본 아마가 세키로 내가 승선할 배를 찾아 가는 것이다

지금은 선주들이 항공기로 승선시키지만 당시는 페리호로 출국할 때가 많았다.

 

아마가세끼 도착하여 처음 승선 하는 상선이라 어리둥절하고 신기했다.

승선하여 선교에 일을 보러 올라가면서 기분도 좋고 하여 휘파람을 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뒤통수를 내려치면서 “야 이 XXX야 누가 배에서 휘파람 불래, 휘파람은 바람을 불러 온단 말이야 조심해”일등 항해사의 벼락치는 고함이 들렸다, 뱃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면 센 바람이 불어 닥친다고 생각 한다. 지금 나도 선원들에게 휘파람을 못 불게 한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누군가가 물에 빠지면 구명조끼에 붙은 호각 소리와 흡사하기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승조 원 들이 휘파람을 불면 야단 치곤 한다.

 

또 날씨가 좋다 하고 이야기 못 하게 한다, 날씨가 좋다고 하면 바람이 불고 날씨가 험악하여 진다고 생각을 한다 대게 좋은 기상 뒤에는 기상 변화에 의해 날씨가 나쁘게 변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자연에 약한 선원들이 어떻게든 마음을 위로 하려는 간절한 바래 움이 아닐까도 생각 한다.

그저 옛 선장님들은 태풍이 불어도 “ 어 그거 시원하게 잘 분다, 날씨가 좋으면 “ 어 참 뭇에 있는 놈들 소풍 가겠네, 또는 서울 놈들이 배 다 타서 우리가 탈 배가 없겠네,” 하며 우회적으로 이야기 하곤 한다 당시 서울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많이 배우고 깍쟁이고 선원들 같이 험한 일들은 안 한다 고 생각하고 힘들고 험한 일은 우리 같은 뱃 사람이 한다고 생각들을 많이 하였던 것 같다 그러니 파도가 없고 바다가 조용하며 바람이 불지 안으니 서울 깍쟁이들이 배 다 타고 우리 같이 무식한 사람은 밀려 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어진다.

 

배에서는 식사 중에 생선을 먹을 때 먹던 생선을 뒤집어 먹지 안는다, 그러면 배가 뒤 집힌다고 생각 하며 접시에 놓인 그대로 놓고 먹으며 뼈를 발라 먹는다 지금은 그러하지 안는다.

 

이 빠진 그릇에 밥을 먹어도 금간 그릇에 밥을 먹지 안는다 배가 금이 가서 침수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는 그러하지 안치만 당시 에는 금간 그릇에 밥을 담으면 난리가 나고 밥그릇이 비행 접시가 되여서 날아다니고 고함소리가 나고 배가 시끌벅쩍 했다.

 

여자가 승선하면 바람불고 재수없다 하고 생각들을 하며 여자의 승선을 거부했다 이는 여성의 비하 하기보다, 배가 여성이므로 여자 가 승선하면 질투의 화신이 화를 내서 바다를 힘들게 하고 용왕이 노하여 파도를 일으킨 다고 생각 하였던 것 같다. 지금은 여성 항해사도 있고 나도 내부인과 같이 5차래나 3-4개월씩 같이 승선하여 항해 하곤 했다.

 

가끔은 항해를 하다 보면 새들이 날아와서 몇 일씩 배에서 쉬어 가기도 한다

 

3항사 시절  어느날인가 비둘기가 항해 중에 배로 날아 들었다 육지와 약 150여 마일 떨어진 거리다.  선장님이 비둘기를 가리키며 “저 손님 배고프겠다, 주방에 이야기해서 쌀 좀 같다 줘라” 하시었다 선원들이 쌀을 주고 물을 주어서 아프리카 도착 할 때 까지 약 일주일을 동승한 적이 있다. 가끔씩 부엉이. 비둘기 물새, 제비 등 철새들이 같이 합승하여 행해 하고 또 쉬어 가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작은 먹이라도 먹이어 보낸다.

 

어느 날 인가 2항사 시절 해안가 묘박지에 닷을 내리고 입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 오리 한 마리가 배의 갑판에 올라와서 날지 못하고 뒤 둥 거리고 있는 것이 안인가, 강원도 촌놈인 나는 올치 저 놈을 잡아서 볶아 먹어야지 하고 숨어 다가가 목을 낚아 채여 잡았다, 신이 나서 “선장님 내가 오리 잡았습니다 볶아서 먹으면  좋습니다.” 신이 나게 선장님에게 보고를 하니 선장님이 얼굴이 붉어지며 내 뺨을 후려 치시며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누가 배에 온 손님을 잡아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무지 하게 혼났다 요사이 말로 3일 밤낮으로 혼이 나고 나서는 선장님만 보면 슬금 슬금 도망을 다니었다 이유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내가 오리를 잡아서 그런 탓이요, 어째튼 배에 무슨 일만 생기면 모두 내 탓이었다 정말 못 살게 아주 집요하게 괴롭히었다. 나중 일등항해사 이야기는 배에서는 배오는 모든 짐승을 잡지 않고 먹이를 주어서 보낸다, 배에서는 쥐도 안 잡는다고 한다 이 만큼 힘들고 위험 한데서 일을 하다 보니 마음이 약해지고 미물에게라도 덕을 베풀어야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여린 마음에서 생긴 일이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

 

배가 출항하기 전에 모든 여자와 관련된 외상 값을(술값, 등등) 갚고 떠난다, 여자에게 욕을 먹으면 풍랑을 만난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한때 부산 남포 동 에서는 선원 이라고 하면 외상을 참 잘 준 적도 있다. 술집 에서 기분도 좋게 팁도 마구 퍼주고 한다 남들은 “마도로스 기분” 이다 하고 이야기 하지만 출항 전날 이제 떠나면 다시 싸워야 할 파도 가 무섭고 바람이 무섭고, 그 마음을 달려고, 아녀자의 험한 소리를 안드르려고  마구 팁을 뿌리고 하였다. 통신 시설이 미흡하고 기상 보도가 늦고 잘 맞지 않는 그 당시의 선원들의 어딘가에 의지 하고픔이 아닌가 생각 한다. 출항하여 배가 풍랑을 만나면 서로들 이야기 한다 “ 어이 누가 술 외상값 갚지 안고 왔어”  지금 가끔씩 우수게 소리로 배에서 이야기 하고는 한다. 그리고는 주 태배기 를 처다 보면 아니라고 팔짝 뛰고는 하는 모습이 무척 귀엽기도 하다.

 

적도 제 라는 것이 있다,

배가 적도 즉 위도 영도를 지날 때 바다의 신에게 제를 지낸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습이지만 적도를 지날 때 돼지 머리를 삶고 음식을 만들어 용왕과 바다신에게 제를 지낸다, 그날은 제를 지내고 술을 마시고 하루 즐기며 쉰다, 옛날 배들이 속력이 느리고 모든 것이 자연에 의지 하는 경향이 많다 보니 자연에 빌고 또 선원들이 하루 쉬며 즐기려고 만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지금은 적도 제를 지내는 배는 거의 없다, 모든 배들이 속력이 빠르고 바쁘게 움직이니 그러할 만 한 여유들이 없어지었다고 본다,

 

이제는 거의 모두가 사라진 규칙들이지만 우리의 선배 들이 무서워 하며 자연에 타협 하려는 아니 잘좀 봐달라는 하나의 애교가 아니었나 생각 하나다. 

                                                                                  

                                                             2009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