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문학의 마을/나의글

나흘의 여행

CaptainLee 2010. 1. 25. 07:39

나흘의 여행

 

                                                                               입원 하였던 병원

 

약 30 - 40일 전부터 이상하게도 몸의 컨디션이 좋지가 않았다.


가족이 있지만 거의 혼자서 생활하여 온지가 벌써 40여 년 아직 크게 아픈 곳 이 없어서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그런대 약 30 - 40일전부터 大便에 이상한 증세가 나타남을 느끼었다,  검게 커피색의 변,   그리고 코 같은 액-기스,  

자주 발생되는 카스 가늘고 짧은 便 화장실에서의 보는 일들이 힘들었다.


인터넷으로 여기 저기 쑤시기 시작했다,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누구에게 상의 할 때도 없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 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하여 진모양이다, 

특히 선원들과 같이 생활 하다 보니 어디 속 시원히 물어 볼 친구도없고 더욱이 아는 지인도 없다. 

그냥 답답함만이 가슴을 누른다.  혼자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고 고민만이 늘어 날 뿐이다


그래도 알아볼 곳은 인터넷 여기 저기 비슷한 증상을 스크랩 하여 읽어 본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병의 지식은 그리 좋지 않은 글뿐이다,

대장암 같기도 하고 직장 암 같기도 하고 위암 같기도 하다,  몹시 불안하다

선친께서 폐암으로 2년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시었다


자꾸 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나쁜 쪽으로 생각이 든다.


    손녀  주리

그래도 한편으로는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본다 그래도 아이들 다 컸고,

딸아이는 그만 하면 알만 한집 며느리 되었고, 3살 된 외손녀도 보았고,

하나 있는 아들 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 나왔고,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도 있고 결혼만  않하였지 다 키웠잖아  그래 하나님이 이 만큼 우리 집에 행복을 누리게 하여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할 뿐이야 자위를 하여 본다.

허나 잠시뿐 곳 마음이 무겁고 쓸쓸 하여진다, 외국에서 혼자 생활 하면서 몸이 불편할 때가 제일 서럽다


어찌하여야 모든일을 잘 정리 할까.

한 분 계시는 팔순 중반이 넘으신 늙으신 어머니가 자꾸 걸린다.

며느리 가 잘 하겠지만 그래도 아들만큼 당신이 편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우리 아들

유럽에 있는 아들에게서 인터넷 전화가 왔다,

화상에 뜨는 그 잘 생긴 아들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눈가에 매친다,

지금 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가족 앞에 눈물 한방울 비친적이 없다,  친지의 장례식에서도.

마음도 약하여 진 것 같다 나에게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오면서 대뜸 호령부터 한다,   "야 이놈아 할머니한테 전화 자주 드려"   "아니 아버님 일주일에 한번 씩 드리는 데요, 지난번 사탕이 자시고 싶어 해서 내 친구 에게 사다 드리라고 하여 사다 드렸어요." 한다.   "그래도 야 매일은 못해도 하루걸러 한번 씩 해 너 엄마는 애기 보느라고 누나 집에 있고 할머니 혼자 계시잖아 노인 이 하루가 어찌 되실지 모르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요." 대답 한다.

그래도 외국에서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뭐 잡수고 쉽냐고 물어 보고 한 동네 있는 아들 친한 친구에게 우리 할머니 사탕 좀 사다 드리라고 하는 손자 놈인데 마음은 그래도 든든하지만 그래도 내가 없으면 손자가 모시어야 하니까 하는 마음에 없는 억지소리를 하여 본다.


몇일후 집에서 전화가 왔다, 대뜸 "어이 마님(부인을 나는 그리 부른다) 할머니에게 자주 가봐 노인 혼자 어찌 될 줄 알고"  "어제 도 같다 왔어 자꾸 잔소리할래요."   "그래도 자주 가래면 가 왜 말이 많아" "오늘 뭐 잘못 먹었어. 왜 전화 하자마자 벼락을 때려 자꾸 그러면 당신 없으니 구박 한다,"   하고 그래도 외국에 있다고 달래느라고 애교석인 목소리로 말한다, 

한참을 이야기 하고 전화를 끊고 후회가 막심하다,   그래도 아들 녀석이 집으로 저 엄마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나 보다,

혼자 속으로 "자식 그래도 심지는 깊어" 하며 머쓱히 웃음을 지어 보았다


왜 아무것도 모른 가족에게 쓸 때 없이 나의 불안함을 그런 식으로 표현 하는지 나 자신이 싫어진다,


배는 입항 하지 않고 산 토스 외항에 벌써 닷을 놓고 20여 일을 기다린다,

선원들은 낚시를 하느라고 난리도 아니다,  근래 들어 갈치에, 한치, 돔, 많이도 잡힌다. 선원들이 잡아서 회라고 가지고 오지만 다른때 같으면 싱싱하고 얼마나 좋은가 허나 지금은 맛이 없다, 매일 매일 신경만 쓰인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친구도 없다, 어디 마음 놓고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

 

                                                                               낚시 하는 선원

 

인터넷 브로그 친구가 있지만 어찌 누구에게 속 마음을 떨어 놓겠는가. 그래도 마음으로 이 사람 에게는 믿음이 가서 이야기 해도 되는데, 물어 봐도 되는데 하여 하루에도 몇 번 그 방으로 같다가 주책이지 하며 나오곤 했다, 그 만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컴 앞에서 여기 저기 인사나 하고 그냥 쑤시고 다니었을 뿐 인대


그래도 이야기를 떠러 놓을 곳은 한국 회사 뿐이었다 회사 전무님에게 개인 이 메일을 보내니 모든 일 중단하고 바로 병원 가라고 무척 걱정을 하는 전무님의 연락이 왔다, 매일 병원 빨리 가라는 전무님의 독촉의 전화다,

그래도 병원은 아직 못 같지만 고마움이 앞선다,


드디어 2010년 1월 17일 대리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곧 입항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은 주일이다,


내일 선주 에게 이야기 하고 병원가야지 하고 월요일 18일 되니 대리점 사람이 와서는 바쁘면 일이 잘 안되려는지 19일 날 배를 이동 하게 되어 있다고 전한다


하루 더 기다리 다가 19일 배를 이동하고 선주에게 전보를 보내니 무척 걱정 하는 말로 곧바로 연락이 왔다,

모든 일 중단하고 병원을 가라고 한다,

선주는 그리스계의 영국 사람이다, 이 회사에 근무한지 25년 넘은 것 같다,

모두들 걱정을 하니 그래도 내가 인생의 삶이 그리 나쁘게만 살지 않았나 보다,

지난번 딸 아이 결혼식에도 꽤 많은  축의금을 보내준 선주 이다.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뿐이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으니 제발 암이 아니고 다른 것 이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인간은 약하니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저 매달려 보고픈 것은 신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20일 1000시경 병원을 찾았다, 

증상을 이야기 하고 진찰하고 피검사 소변 검사를 하고 바로 입원하란다, 도통 무었인지 말도 안하고 고개만 갸우둥 거린다 나는 아무러치도 아니니 이야기 하라고 하니 집안에 누군가 암을 치료한적 있는 사람이 있냐고 한다, 선친이야기를 했다 ,

자세한것은 검사를 하여야 알지만 반 반 이란다, 그런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고,  아주 심각 하게 이야기를 하니 더욱 떨리고 눈만 껌벅 거리고 있었다.

 


의사와 상의해서 다시 배로 와서 대충 정리하고 일등 항해사에게 중요한 일을 지시하고, 배와 연락할 통신기와 이 메일 하기 위한 컴퓨터 하고 짐을 챙기어 그날 오후 2시 반경에 병원으로 향했다


가족도 없이 혼자 병원으로 향하는 마음, 선원들이 바라보는 쓸쓸한 시선, 역시 뱃놈은 양반이 될 수 없구나 싶다, 꼭 오지 못할 길을 가는 것 같은 기분 발길이 무척 무겁다. 옜말에 소가 도살장 가는 기분 이란 말이 실감 난다.

병원 도착하여 전화기와 무전기 그리고 컴퓨터를 설치하고 병실에 임시 선장 직무실을 꾸미고 배와 모든 연락 할 수 있게 조치를 하고 의사의 방문을 기다린다,

 

                                                      병실에 차린 직무실 (이동 인터넷, 무선기, 콤퓨터)

 

선주의 특별 지시와 특수 비용 첨가 + 알파로 바로 검사로 들어 같다,  역시 외국도 마찬가지다 돈이면 모든것이 속히 이루지니 역시 금전의 위력을 다시 실감했다, 보통 레시경을 하려면 일주일 이상 기다린다고 한다. 

한국 회사와 선주가 정말 고맙다, 나 하나 그리고 외국인이고 단순한 고용인인 선원 일뿐인데 다른 선장으로 바꾸고 보험 처리 하면 비용도 저렴하고 신경도 안 써도 되는데 이렇게 까지 하여 주니 고마움이 절로 솟아난다.


   약물 담아두었던 피티병

입원한 그날 20일 저녁부터 약물을 피-티 병으로 하나를 주면서 금식하고 1,5리터 정도의 물약을 다 마시고 속을 세척 하란다 기다림도 없는 바로 검사에 들어간다. 그래도 잘못 될까 보아 한 방울 안 남기고 모두 마시었다 평상시는 배짱은 남다르게 컷다고 생각 했는대 몸에 병이 있다 보니 마음도 약해 지나보다,


혼자서 아무 보호자 없이 받아야 하는 치료 검사 불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불안 해서 잠이 안 온다, 누구에게 하소연 할 때도 없고 나는 혼자라는 생각뿐이다, 거기에 만약 나쁜 병이면 하는 마음, 무겁고 슬프다, 그러나 알면 걱정할 가족을 생각 하면 모르는 것이 낫지 하는 마음으로 회사에 집으로 연락 하지 말라고 하고는 혼자서 연락 하지 않은 것이 잘 한 일이지 하며 나 자신을 위로 한다.


그래도 선장이라고 몇몇 선원들이 주스를 사 들고 면회를 왔다, 아무러치 않은 듯 태연한 척 농담을 받으며 선장의 강인함을 다시 인식 시킨다 " 야 너히들 뭐 하러 왔어 나 말이야 쉬기 위해 여행 온 거야 한 3-4일만 여행 하고 갈 태니 잘해,  집에(우리끼리는 배를 정겹게 하기 위해 집이라고 부른다) 가서 볼 거야" 하며 슬며시 말을 돌리곤 했다.

 

 

개인 보관함 이라고 하며 작은 상자를 간호사가 가지고 왔다 거기에 중요 품을 넣어서 보관 하란다, 보관 함이 공교럽게도 번호가 4번이다, 기분이 나쁘고 우울 하여진다,  건물에도 4번은 안쓰는데 왜 하필 4번이야 불길한 생각이난다.  더우기 여기다가 돈과 신용카드 사진기 시계등  귀중품을 두면 통채로 집어가기 더욱 쉽게다 싶은게 헛 웃은이 절로 나왔다.

우리 나라에만 있는 미신이지만 아니 4 와 한문 死 와 발음이 같다 하여 생긴 것인지 알지만 그래도 기분은 그래 좋치는 않다.

                                                             귀중품 보관 상자 4번

 

21일 1130분경 검사실로 향했다 마치 죽으러 들어가는 소모양 모든것이 멍 하다 사람들 얼굴 의사 얼굴 간호사 얼굴 모두가 너무도 무덤덤히 바라보인다 암이면 어찌하지, 집에 이야기 할걸, 믿는것은 하나님뿐 모태 신앙이다 보니 자꾸 기도만 나올 뿐이다. 다시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그 언잰가 읽어던 "아버지" 라는 책이 생각 났다,  마취를 하고 레이시경 검사를 하였다

 

1450분 마취에서 깨여 방으로 오니 멍하다, 더욱 불안하다, 인생을 어찌 정리 할가 하고 이것저것 공상한다 우리 마님에게는 뭐라고 하나, 아이들에게는 아니 나이드신 어머니 에게는 꼭 아이 같으신데, 친구 에게는 무슨이야기를,    머리만 더욱 멍해진다. 의사도 안 오고 간호사도 영어를 모르니 말을 안 하고 혼자 방에 있는 그 심정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고 그저 나는 교인이니 매달리는 것은 하나님 기도뿐이었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른지  배에서는 계속 일과가 보고하여온다 기관 문제, 화물 하역 문제, 대리점 문제, 등등 그러면 안되는데 모든것이 건성으로 대답하고 건성으로 지시하게된다.  선주와 한국 회사에서 경과가 어떻 한가 계속 문의가 온다,

귀찮고 짜증난다  이것 저것 사무를 보지만 일이 손에 안잡힌다,  밤새도록 엎치라 뒤치라 밤을 새웠다.

 

                                                                          병실 침대

22일 아침 이 되니 10시경 의사가 왔다

그러니까 선장님은 대장에 큰 물집이 생기어 잘라 내 별 이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위계양이 조금 있으니 조심하세요

아 이런 환희!!!!!   의사의 한마디 다행이 컨설은 아니라니,  그 의사의 한마디가  어떠한 오케스트라 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이었다.  천상에서 나는 그 아름다운 소리였다,  의사가 나가고 나서 그럼 그렇지 내가 누군데 혼자 춤추고 난리가 났다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고이고, 빨리 집에 전화 하고 싶고, 아이들도 보고 싶고, 뭘 어찌 하여야 할지 맘이 붕 떠서 그냥 마약에 취한 듯 멍 하다


저녁 늦게 우리 마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 이야기 하니 놀랜다, 왜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되려 큰소리 치는 우리 마님 옆에 인터넷에 뜨는 딸의 얼굴 아빠는 왜 꼭 그리 모든걸 혼자 하려고 해요 우리는 뭐에요 자식이없어 엄아가 없어 왜 독거노인 흉내를내요 그럼 뭐 멋 있는줄알아요 그럼 우리 마음이 편해요, 왜 혼자 평생 외국에 살지요, 울먹이며 따발총같이 따따 거린다

그소리도 너무 좋아 꼭 예쁜 노래 같이 들린다

그날 밤은 잠도 잘 왔다 행복 했다.

이제 배로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니 아니 병원에서 2-3일 더 쉬면 안 될까 하는 꾀가 생긴다, 정말 사람의 마음이 이리 간사한지 모르겠다.

 

                                                                     브라질  병원 식사

 

저녁 식사가 나왔다 식구(선원)들이 가지고 온 김치에 밥이 어찌 그리 맛있는지 모두 먹고 어디 더 없나 두리번 그려본다.

23일 1000시에 보따리를 쌓으며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이재는 몸 관리를 잘 해야지,  더욱 사랑을 벼풀어 야지, 우리 식구들이 조금 잘못해도 전에 마냥 야단 안치고 달래 봐야지,  가면 사람들 밥 한 그릇 사줘야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 기도 하는 모든분들을 위해 기도 해야지. 등등  나름 대로 또 다른 생각이 많아 진다

 

23일 토요일 1300시경 집에 왔다, 보통 선박의 식사는  토요일은 회 이고 일요일은 국수 종류다. 회 한그릇 하고 방에 오니

선장 사무실 청소가 병원 갈때  그대로이다, 청소가 한마디로 내 마음에 안든다, "야 싸롱 임마 정리가 이게 뭐야 다시해 그리고 3항사 오늘 하역량이 얼마야," 다시 소리치고 고함친다

 

조금전 병원 출발시 안 그러기로 하고 모든것을 순리대로 하기로 마음 먹고 금방 변하니 나도 참 한심하고 무식 한가보다.

다시 조심 하여야지 하며 웃음이 절로 나와 싱긋 웃었다, 청소 하던 베트남 선원이 보고 이상 하듯 고개를 기웃한다, 아마도 돌았다고 생각 하겠지 후 후 후

 

그래도 하나님 감사함 뿐이다.

못난 저를 이리 사랑 해주시어서 정말 감사 합니다

 

 

 

                                                                                            병원 정원 과 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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