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문학의 마을/뱃 사람 이야기

멋진 귀국

CaptainLee 2011. 3. 26. 02:42

오늘은 우리식구가 집으로 돌아 갑니다

 

일년이라는 시간 너무도 길것도 갔지만 지나고보면 아~~ 벌써 하고 씩 웃는다

일년전에 이들이 작업복 몇벌 작은 가방에 넣어서 어깨에 들춰 메고 꼬박 이틀 걸여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미안마에서 이곳 남미로 날아 온것이다

그저 없는 살림에 혹은 목돈 모아 장사라도 하겠다고 돈을벌러 이곳 브라질

까지 와서 그리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하며 지내다 이재

일년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각자의 고향길로 향한다

 

1970년도 초에  우리 나라 선원들도 마찬가지로 보타리 하나을 울러 매고

일본 배를 타러 나왔다

부산항을 떠날때 부관 페리호에 몸을 싣고 고국을 떠났다 

부관 페리는  오후 5시인가 6시에 부산을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시모노새께에 도착 했다

승선 하면 배가 출발시 선내에 울여 퍼지는 노래  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 노래가 나오면 눈물이 맘을 적시고 다시 못올것 같은  생각에

모두들 무척 숙연 하여지곤 하였다

그 당시 3항사의 봉급이 9급(당시 5급을) 공무원의 봉급에

10배의 봉급이기에 고소득에 해당 되었다

 

어떠한 선원는 말하길 자신의 봉급이 우리사는 시의 시장 보다 많어 하며 농을 하기도했다

그러하니 많은 사람들이 선원으로 승선하기 위하여 부산으로 모여 들었고

여관 혹은 여인숙에 숙소를 정하여 출국하길 기다리곤 했다

지금은 3D 직업으로 모두들 기피 하지만 당시는 그래서

여성들의 결혼 하고픈 직업에 순위에 들어샀다 

 

70년대는 우리 선원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우리 선원들이 벌어 들는 외화가 일년에 2 - 3억 불이 넘었으니 말이다

70년대의 순수익 2-3억 불은 당식 거의 수십억억불 무역 수출과 같지 않았나 생각 된다

너무도 어려운 나라 살림에 돈이 되는것은 모두 내다 팔고

또 돈이 된다고 하면 뭐엇이든 수출을 우선으로

이루어 지었으니 우리 나라 경재의 주추 돌은 선원이 이루어 내다고도 할수 있다

물론 월남의 전쟁의 댓가 와  중동의 노무자 땀의 결실과 함께 라고 할수도 있지만

 

이는 밑천이 않드는 순수한 우리 나라의 외화벌이었다

달랑 작업복 하나 둘러메고 나가  몸으로  벌어드리는 뱃 사람들의 외화

이는 많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을 수출하여야 벌어들이는 이익금에 비하면

자원 하나 드리지 아니하고 순수익을 올이는  외화는 국가의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 왔다

 

하여 지금은 필리핀, 미안마,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등에서는 정부에서

특별 전담부서 까지 두어 가며 선원 송출에 힘쓰고 있다

이렇게 살아온 선원들이 이재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3국으로 넘기고 있다

 

70년대 초 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원이되기를 자처하고 나서니 사람은 많고 승선할배는

없고 보니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고 구전을먹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 했다

 우리는 그들을 브로커 라고 부르며 필요의 악으로 함께 공생을

하며 살아 가기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중국과 미안마 그리고 베트남등 동남아 개발도상국으로

그 몫이 넘어가고 그들이 우리의 70년대의 생활을 뒤따라하고 있다

 

직급에 따라 봉급이 틀이지만 보통 중진급 선원들이 받는 봉급이 1200불 선이다

그들 나라에서 일하고 받는 한달 봉급이 약 100불에서 150불선

그러하니 그들이 봉급이 고소득이기에는 틀림이없다

이제 이들은 무사히 일년의 계약 마치고 가족의 보금자리로 간다

 

참 고생 많이 하였다 성질도 그리 온화하지못한 선장 밑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귀국하는 선원들이기에 더욱 애뜻 하기만 하다

 

집에 가지고 갈 짐을 세관에서 하나 하나 검사하고

그것을 봉인한뒤 공항까지 옮긴다

짐을 공항으로 이동할 차로 옮기고 모두들 가는사람이 부러워 멍하니 바라볼뿐이

왜 아니겠나 집으로 돌아 가고품이 넘치고 넘치겠지

그들은 고달품 보다 가족의 그리움이 더욱 마음이 아플것이다

 

짐을 차에 싣고 떠날 준비한다

이 안에 짐속에는 사랑하는 부인에게도 아이에게 줄 선물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등 모두 들어 있겠지

자신을 위해 쓰지도 아니하고 꼬기 고기 모아 두었던 돈으로 장만한 선물

받는 사람은 별것 아니겠지만 준비한 이들에게는 더없이 값진것이다

서로 인사를 하고 이제 헤여지면 언재 만날지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이들 언재일지 기한이 없는 이별

눈물짖기도 하고 주소를 적기도 하며 그간 노고를 달래 주곤 한다 

 

 보내는것이 아쉬운지 사진 한장 찍어 달랜다

서로의 기념사진,

헤여지면 언재 만날지 모르고 국적이 베트남,  중국 서로 다르니

그래도 웃으며 헤여지니 그져 고맙기만하다

 가는 사람 짐을 싣어 주고 울적한 마음으로

그냥 부러워 처다 보는 우리 남은 식구들

 

 귀국 선원을 싣고 차가 떠나고

 남은 식구들 서운하고 가고파 그저 쓴 웃음으로 얼 버무린다

왜 아니 가고 싶겠는가 부모 형재가 계시는 집인대

나도 맘이 찡 한대 이들은 젊으니 더욱 그러하겠지

친구를 보내고 고개를 숙이며 쓸쓸이 돌아서는 이들 마음의 눈물을 흘이고 있는지 모른다

식구들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축처진 모습이 너무도 힘이 없다

가고품 그리고 가족의 그리움

허나 우리 식구들은 곳 정상으로 다시 회복되어 곧 일상 생활로 돌아 올것이다

나는 우리 식구들을 믿는 곧 그리되리라고

 

우리들은 이야기 한다

오늘 왔다 돈을 못벌고 내일가도 집으로 향하는것은 즐거운 일 이라고